
제주도를 그냥 막연히 가고 싶다고만 생각하다가, 만장굴이 다시 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서 그 '막연함'이 갑자기 구체적인 계획으로 바뀌었습니다. 2023년 낙석 사고 이후 정밀 보수를 마치고 재개방된 만장굴, 올해가 발견 80주년이라는 사실까지 더해지니 괜히 이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천 년이 만든 공간, 만장굴의 지질학적 특징
총 길이 7.4km에 달하는 만장굴은 용암동굴(lava tube)입니다. 용암동굴이란 화산 폭발 시 지표를 흐르던 용암의 외부가 먼저 굳어 껍질을 형성하고, 내부의 용암이 계속 흘러나가면서 생긴 빈 터널 구조물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용암이 스스로 만든 지하 통로입니다. 만장굴은 약 8천 년 전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규모의 용암동굴이 현재까지 원형에 가깝게 보존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뭅니다(출처: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만장굴 내부에서 눈에 띄는 지형 요소 중 하나가 용암 석주(lava column)입니다. 용암 석주란 동굴 천장에서 흘러내린 용암과 바닥에서 쌓인 용암이 서로 맞닿아 하나의 기둥 형태로 굳은 지형을 가리킵니다. 만장굴의 용암 석주는 높이가 무려 7m에 달하며,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대 규모입니다. 제가 사진으로만 봤을 때도 그 압도감이 상당했는데, 직접 서서 올려다보면 어떤 느낌일지 솔직히 가늠이 잘 안 됩니다.
또한 동굴 내부에는 용암 종유석(lava stalactite)과 용암 선반(lava bench)도 관찰됩니다. 용암 종유석은 천장에서 용암이 방울져 굳은 구조이고, 용암 선반은 동굴 벽면을 따라 용암이 여러 차례 흐르면서 층층이 굳어 생긴 단 형태의 지형입니다. 이 두 요소는 화산 지형 연구에서도 중요한 자료로 쓰이는데, 만장굴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데에는 이런 지질학적 희소성이 크게 작용했습니다(출처: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만장굴 재개방 이후 달라진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위험 구간에 안전 구조물 신규 설치 및 탐방로 데크 정비 완료
- 낙석 사고 이후 정밀 보수 공사와 11차례 안전 점검 시행
- 녹색 오염 방지를 위한 내부 조명 밝기 하향 조정
80년 전 초등학생들이 찾아낸 동굴, 그리고 지금
1946년, 고 부종휴 선생과 당시 초등학생 탐험대가 처음 만장굴의 내부를 확인한 지 올해로 꼭 80년이 됩니다. 이 이야기를 처음 알게 됐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국가적 탐사대나 전문 지질학자들이 아니라,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들어간 게 공식 발견의 시작이었다는 점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 탐험 정신이 지금의 세계자연유산을 세상에 알린 시작점이었던 겁니다.
이번 재개방이 더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단순히 동굴이 다시 열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안전 보수 과정에서 또 하나 챙긴 게 있는데, 바로 녹색 오염(green contamination) 문제입니다. 녹색 오염이란 동굴 내부의 인공 조명이 광합성을 유발해 이끼나 조류가 암벽 표면에 번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 이끼가 확산되면 동굴의 암석 표면을 변형시키고 원래의 지질 구조를 훼손할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이번 보수에서는 내부 조명 밝기를 낮추는 방향으로 개선했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은 공간의 일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 쓴 흔적이 보여서 이번 재개방은 준비가 꽤 꼼꼼하게 됐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처음부터 압도적 규모의 입구로 시작해서 세계 최대 용암 석주로 이어지는 동선, 8천 년 전 화산 활동의 흔적이 천장과 벽면 곳곳에 그대로 남아있는 공간. 제 경험상 이런 류의 자연 유산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아무리 많이 봐도 현장감을 절대 대체할 수 없습니다. 80주년이라는 타이밍과 재개방이 겹친 올해가 어쩌면 가장 좋은 방문 시점일 수 있습니다.
만장굴 재개방 소식에 그냥 스쳐 지나갈까 하다가, 알면 알수록 이건 그냥 동굴 구경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 제주도 일정을 잡고 있다면 만장굴을 일정 맨 앞에 두는 걸 권합니다. 80년 전 아이들이 걸어 들어간 그 입구를, 이번엔 직접 서서 확인해 볼 계획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S3fk-hKGzSA&pp=ygUP7KCc7KO866eM7J6l6rW0